20대 때에는 30대라는 나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숫자를 안다는 것이지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보진 않았다. 이제 40대를 지나고 있는 현재로서는 마찬가지로 50대라는 나이가 나와는 상관없는 나이로 인식이 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으니, 바로 주위의 어른들이 한 두 분씩 돌아가실 때이다. 벌써 친구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오기도 하고 친척이 돌아가셔서 갔다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드는 두려운 생각은 바로 우리 부모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시겠지, 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가 죽을까봐 두려워 하듯이 나도 그런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 피상적인 생각말고 좀 더 나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죽어갈 때의 그 고통이 두렵고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긴 뒤로는)남겨지는 아이들이 어찌될까 두렵다. 그렇다면 언제 무엇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까. 곰곰 생각해 보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이렇게되면 결국 돌고 도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얼마 전에 어떤 책을 보다가 타이타닉호에 대한 글을 읽었다.(물론 영화도 보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숨졌다는 이야기를. 그 순간 느꼈던 것은 그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앞서 바닷물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한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책은 트리갭이라는 샘물을 우연히 마신 한 가족이 겪는 어찌보면 부러우면서도 어찌보면 불쌍한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이라. 그것도 특정한 나이에 멈춰 버린 삶이라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다. 특히 노년에서 멈추었다거나 자기 정체성을 가지려고 방황하는 시기에 멈추었다면, 아니면 끊임없이 아이들을 돌봐야하는 시기에 멈추었다면. 아니 이런 것은 그만두고 우리가 오늘을 열심히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야겠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오늘이 계속된다면 처음에는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살다가도, 끊임없이 계속된다면 나중에는 결국 지치게 되지 않을까. 책 속의 식구들처럼 말이다.
어떤 때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지금 이대로 영원히 살았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떨까를 생각하면 차라리 끝이 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터크 가족이 어린 꼬맹이 위니와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위니의 무덤을 지나서 어딘가로 정처없이 떠나는 장면을 생각하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