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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내가 훔치고 싶은 건 사랑이야:도벽
작성자
이정향
등록일
Apr 3, 2013
조회수
6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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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모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접하는 사람의 사랑도 필요하다. 만약 사랑이 부족하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다양한 반응을 보일 텐데 도벽도 그 중 하나다. 간혹 어린 시절에 작은 물건을 훔친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대개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고 지속적으로 그랬다면 그처럼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도벽이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뿐 학교 현장에서 그러한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적인 것이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을 테고 습관적으로 그러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친구들이 평소엔 잘 놀아주지 않지만 먹을 것이나 학용품을 사주면 같이 놀아주자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 남의 지갑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아이도 훔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훔치면서도 조마조마해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자꾸 반복될수록 양심의 소리는 작아지고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나마 마음이 올곧은 아이라면  《들키고 싶은 비밀》의 은결이처럼 차라리 빨리 들켜서 죄값을 치른 다음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은결이는 자꾸 훔치는데도 엄마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여기기보다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의 여진이는 결코 훔치고 싶지 않은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건을 가방에 집어넣곤 한다.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엄마는 항상 바쁘고 피곤하기에 속으로 삭인다. 결국 여진이는 사랑이 고팠는데 그것을 물건으로 대치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엄마가 "그렇게 힘들었어? 그렇게 허했어? 엄마가 몰랐어. 미안해."라는 말 한 마디에 대성통곡을 하게 되고 그 동안의 일들이 눈물에 씻겨내려간다. 역시 약은 가족의 사랑이다.  

  학교 현장에서 도벽으로 인한 사건이 터지면 선생님들은 대개 동일한 패턴을 사용한다. 여진이 담임선생님이 사용했던 방법으로서 눈을 감으라고 시킨 다음 자신도 그랬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누구나 한 번 실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일종의 동일시효과라고나 할까. 그 중 선생님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아이가 있으면 대개는 그 아이가 훔친 것이라고 한다. 여진이는 그런 뻔한 이야기에 걸려들 아이가 누가 있겠느냐며 냉소적으로 반응하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꽤 쓸만한 방법이라니 어린이에게 순수함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내가 훔치고 싶은 것》에서는 여진이의 도벽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언제쯤 여진이의 비밀이 들통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되지만 똑같이 도벽이 있는 친구를 이야기하는 《비밀의 시간》에서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게 된다. 《비밀의 시간》의 비르기트도 수시로 물건을 훔친다. 자식은 무조건 부모에게 복종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비르기트의 아빠는 집에 우유가 많아도 우유를 사오라고 시킨다. 비르기트는 아빠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심부름을 한다. 비르기트가 말로는 재미있어서 훔치는 것이라고 하지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빠가 밉지만, 아빠라서 미워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해 훔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르기트에게 도벽이 있다는 사실을 레나만 알고 있다. 그것도 비교적 이야기 초반부터 알았기 때문에 비르기트가 누군가에게 들킬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나중에 레나가 물건을 훔치게 되었을 때 레나는 어떻게 헤쳐나갈까 걱정될 뿐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친구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래서 부모들은 친구를 잘 사귀길 바란다. 문제는 자신의 아이가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친구의 역할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내 아이 친구는 이랬으면 하고 바란다면 내 아이도 다른 누군가에게 남들이 원하는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도 그 점을 간과하곤 한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레나도 비르기트에게 물들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판단할 것이다. 물론 그런 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과연 꼭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비르기트가 묻기도 전에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 지 알았다. 비르기트가 먼저 묻지 않았더라면 내가 먼저 비그기트에게 부탁했을 것이다. 마음은 먹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까. (124쪽) 

  비르기트는 세심하게 신경써 주는 가족이 없었지만 레나는 훌륭한 가족이 있었다. 제대로 된 삶을 실천하는 할머니와 가족을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한 번의 일탈로 모든 것을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르기트에게도 선물로 훔친 물건은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게 되었다. 전에는 비르기트가 레나 엄마에게 훔친 물건을 선물했을 때 받고 싶지 않아도 차마 거절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것이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절실히 깨달은 레나는 확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렇게 둘은 힘든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나갔다. 비르기트는 좀 더 먼 길로 돌아오긴 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왔다. 

  레나처럼 딱 한 번 물건을 훔친 것 때문에 마음 고생을 실컷한 아이가 또 있다. 《소나기밥 공주》의 공주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병원에 들어가서 배고팠던 공주는 윗집 아주머니의 배달물품을 중간에서 가로채 밥을 배부르게 먹는다. 학교에서 점심을 실컷 먹어둬야하기 때문에 소나기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먹성이 좋은 공주지만 이상하게 훔친 물건으로 음식을 해먹을 때마다 체하고 만다. 레나와 공주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레나가 훔친 물건으로 차마 식구들에게 선물을 주지 못하고 눈속에 파묻고 온 다음 심하게 앓았다. 공주도 기절할 정도의 배탈을 겪고 나서 자신의 잘못을 윗집 아주머니에게 자백했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 주인공이 아픈 경우가 많다. 공주는 그나마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기라도 하지만 《불을 가진 아이》의 동배는 남의 물건을 훔치면서 잠시 빌리는 것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한다. 동배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외면하는 것이다.  

  간혹 도벽 때문에 마음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건을 훔친다고. 《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의 하리 엄마가 그렇다. 태어나자마자 병이 있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못하고 저세상으로 보낸 아들 때문에 사내아이를 보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훔치는 것이다. 레나나 공주는 도벽이 아니라 단지 물건을 훔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리 엄마는 도벽증이다. 물건을 훔칠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사내아이를 보는 날과 같은 특정한 이유가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훔치는 것을 봐도 그렇다. 하리는 남의 물건을 집어들고 왔지만 그것을 하필이면 도벽증이 있는 친구한테 걸려서 억지로 물건을 훔치게 된다. 도벽증이 있는 엄마를 닮아 자신도 물건을 훔치는 것이라는 자책을 하는 하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실제로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재미로, 혹은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 간혹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슬쩍 가방에 집어 넣는 경우도 있지만 그 조차도 한 두 번 반복되다가 습관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도 물건을 훔치는 경우가 있다. 예주가 그런 경우다. 하리를 뒤에서 조종하는 게 바로 예주인데 하리도 처음에는 예주의 형편이 좋지 않아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알았지만 알고 보니 경제적으로는 아주 풍족한 환경이었다. 대신 사랑이 부족했을 뿐이다. 엄마와 아빠가 부부사이를 위장하기 위해 자신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예주는 허전한 마음을 물건을 훔치는 그 순간의 쾌감으로 보상받으려 했다.  

  <금이 간 거울>의 수현이도 집과 학교에서 받는 억압을 도벽으로 해결한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험에 의하면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득이 된다고 한다. 물고기를 장거리 이동할 때 수조에 한 종류만 넣는 것보다 천적과 함께 넣는 것이 살아날 확률이 높다지 않던가. 이것은 아예 스트레스를 제거하는 것보다는 약간의 스트레스가 활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도벽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매우 소심한 수현이는 우연히 작은 거울을 하나 훔쳤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모든 사람들이 수현이에게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착하다. 그러나 정작 수현이는 그 소리가 듣기 싫다. 특별히 칭찬할 것이 없으니까 습관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싫어한다. 엄마와 아빠는 동생만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수현이는 어느 순간부터 훔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본인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수현이는 어쩌면 최선일지도 모르는 방법을 선택한다. 훔친 물건이 있던 곳에 거울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리 결심해도 들키지 않는 한 물건을 훔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수현이는 들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두렵지만 동시에 들키고 싶어, 아니 들키기 위해 마지막 도둑질을 한다. 화가 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훔치는 수현이는 하리 엄마와 비슷한 상황이다. 관심을 받고 싶어 물건을 훔치는 여진이나 수현이는 물건을 훔친 사실을 알고 혼내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날 제대로 봐주지 않으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시킨다. 도벽은 일종의 정신병리학적 증상이기에 이처럼 마음 먹는다고 고쳐질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려 한다. 그런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가 하면 충동적으로 딱 한 번 물건을 훔치는 경우도 있다. 공주가 순전히 배가 고파서 충동적으로 윗집 아주머니의 배달물품을 가로챘듯이 《열여섯 살 베이비시터》의 에밀리앵은 여자 친구에게 향수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슬쩍한다. 여자 친구인 마르틴느 마리의 사촌, 아망딘느가 상습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걸 접하지 않았다면 에밀리앵이 비록 충동적이라 해도 물건을 훔칠 생각을 했을까. 아망딘느가 엄마 가게에서 훔친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으로 미리 예행연습을 한 셈이니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물건을 훔치다 들켰을 때의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에서 하리가 들켰을 때 불려온 하리 엄마는 주인에게 쩔쩔매며 100배에 달하는 금액을 변상하지만 《열여설 살 베이비시터》의 에밀리앵 엄마는 아주 당당하다. 정확히 물건값만, 그것도 현금을 더 좋아하지 않느냐며 약간은 빈정대는 투로 이야기한다. 그 후에 자녀를 대하는 방법도 다르다. 하리 엄마는 딸에게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고 하리는 죄책감을 갖는 반면 에밀리앵 엄마는 그런 행동 하나로 지금까지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듯 행동한다. 두 엄마가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물건을 훔친 자식을 대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는 것일까.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부터 청소년 책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도벽을 다루는 것으로 보아 성장기에서 흔히 마주치는 게 도벽이 아닐까 싶다. 의도적이든 충동적이든 이성적으로는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당사자는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자책한다. 모든 책에서 그러한 주인공의 마음이 잘 드러나있다.   

《들키고 싶은 비밀》(황선미 글/창비)

《비밀의 시간》(마르야레나 렘브케 글/시공사)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이종선 글/푸른책들)

《소나기밥 공주》(이은정 글/창비)

《금이 간 거울》 중 <금이 간 거울>(방미진 글/창비)

《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김진영 글/푸른책들)

《열여섯 살 베이비시터》(마리 오드 뮈라이 글/사계절)

《불을 가진 아이》(김옥 글/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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